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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ORDER RESEARCHES/INTERNATIONAL LAW

국제법의 아버지 그로티우스는 왜 비판받는가

by 국경따윈무시하는고양이 2025. 6. 1.


2025년 5월 30일 금요일,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모의법정에서 대한국제법학회 Grotius 학술대회가 열렸다.
Hugo Grotius(본명 Hugo de Groot)의 법사상에 대한 재조명 자리였다.




Hugo de Groot, Michiel Jansz van Mierevelt 그림, 1631, Wikipedia



그로티우스라는 인물은 국제법을 배웠거나 관련 서적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게 된다.
그로티우스는 네덜란드 출신 귀족으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변호사로 활동했다. 네덜란드와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등의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과 경쟁하던 시기이다. 그는 <전쟁과 평화에 관한 법>, <해양자유론>이라는 책으로도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로티우스 관련 글을 서칭해보면 근대 자연법의 창시자 혹은 국제법의 아버지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필자도 강연 포스터 속 Grotius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국제법의 아버지’라는 어렴풋한 인식과 자연법 이론의 대표자라는 키워드가 머릿 속에 무의식적으로 떠올랐다. 이는 과거 국제법 위 서적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듯 하다.

<신국제법강의> (정인섭 저)를 확인해보니 p.13-14에 그로티우스가 처음 등장하고, 이후 세 번 정도 다른 페이지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로티우스의 대한 스토리가 상당히 잘 정리되어 있고 꽤나 자세히 다룬다.

혹시나 해서 —한동안 안 읽은지 꽤 된— <국제법론, 김대순 저>의 책을 통해 그로티우스가 어디 나오는지 확인해 봤는데, 그로티우스라는 이름은 색인에 없었다. 그래서 김대순 저에서는 그로티우스가 등장하는지 잘 모르겠다.(혹시 찾으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강연은 대단했다. 강연의 시작에서 그로티우스는 간단히 소개되었고, 그가 다뤄지는 방식은 마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와 같다고 하였다. 그에게 씌워진 여러 겹의 해석을 모두 벗겨야 그의 실제 생각이 담긴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역사적 맥락과 원문에 기반해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로티우스의 생애와 법사상’, ‘그로티우스의 유산’, ‘그로티우스, 노예제, 식민주의’, 종합토론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 학술회의에 계셨던 모든 분들이 준비를 많이 하신 것처럼 보였고, 국제법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발표는 훌륭했다.
그중 내 기억에 남은 발표는 이재승 교수님(건국대, 한국법철학회 회장)의 ‘그로티우스, 노예제와 식민주의’였다.
발표 PPT가 주로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어서 눈이 편했고, 그의 스토리텔링에 빠져들었다.
국제법 관련 강의였지만, 역사와 예술이 접목되어 세계사 강의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강연의 시간 한계로 인해 발표하는 분들이 시간에 쫓기며 이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했지만,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며 교환해 보는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천천히 그들의 생각을 음미하고 싶었는데, 그 점이 아쉬웠다. 내 욕심일지 모르지만,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으면 어땠을까.




난 강연이 끝날 무렵,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그로티우스는 국제법의 아버지이고 자연법이론의 대표자이다. 그는 그의 주요 서적으로 국제법 학문 자체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 학술대회가 개최된 것만 봐도, 그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저작물들은 간접적으로 국제법의 기반 형성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의 저술과 행적이 모두 정당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그가 정당했냐에 관한 논란이 존재한다. 그의 의식 속에 유럽 우월주의가 있었는지, 또한 그의 성과들로 인해 파생될 동기와 이익에 대한 자각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에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그의 저술 동기가 평화를 위함이었다 하더라도, 그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그가 동인도 회사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다는 정황이 이미 존재하고, 실질적인 피해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 위법성은 쉽게 희석될 수 없어 보인다. 그저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피해자들은 침묵했을 뿐이다.

법은 정의와 질서를 위해 존재한다.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의도가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의 행적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피해자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문제가 된 사건들에 그로티우스의 책임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국제법의 논리를 대체할 새로운 규범이 등장했을 때, 그로티우스의 법이론이 형성 초창기에 피해를 야기한 것처럼, 그것이 특정 이익을 위한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 역시 존재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