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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회의 1814–1815 완전 정리|배경, 주요 결정, 국제 질서 재편

국경따윈무시하는고양이 2025. 6. 8. 20:15

빈회의 1814 1815 요약 정리 배경 내용 결과 의의

빈회의 1814년 9월 - 1815년 6월
Congress of Vienna

 


목차

1. 빈회의의 정의과 기본원칙
2. 주요 열강의 입장
3. 빈회의의 주요 결정
4. 빈회의의 의의


 

Jean Godefroy: The Congress of Vienna

 

Congres van Wenen, 1815

정의

빈회의는 1814년 9월~ 1815년 6월에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사후 수습을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한 유럽 열강의 국제회의이다.



기본 원칙 : status quo ante bellum (전쟁 이전의 상태)

빈체제 및 유럽협조체제를 지배한 원리는 세력균형과 정통주의 원칙이다. 이 원칙들이 빈회의에서도 적용되었다. 회의의 목표는 프랑스의 재흥방지를 위한 세력균형의 모색과 유럽의 국제정치 질서를 나폴레옹 전쟁 이전으로 회귀시키는 것이었다.
국경을 재획정함에 있어 유럽 주요 세력 간 균형을 고려하는 한편 나폴레옹 전쟁으로 퇴위당한 기존의 왕조들을 복귀시켜 국제질서의 안정을 확보하자는 취지이다.



“Le Congres ne marche pas, il danse"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진전은 없다. 질질 끄는 회의를 춤으로 묘사한 풍자화


빈회의에는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 외무장관, 영국의 로버트 스튜어트와 웰링턴 공작,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왕과 프랑스의 외무 장관 등등 여러 국가의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각국의 이해관계의 충돌과 복잡한 국경획정 문제로 회의의 진행은 느렸다.

각국의 다양한 외교술과 비공식적인 만남과 사교행사도 회의의 진행을 느리게 만들었다.




유럽 열강의 입장

영국 : 이중장벽 정책; 영국은 자국의 시장 안정과 경제성장을 위해 유럽 대륙에서 세력균형 유지를 선호했다. 따라서 프랑스와 러시아를  견제하는 이중장벽정책을 내세웠다. 중부 유럽의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을 강화시켜 프랑스를 견제하고, 러시아의 중부 유럽으로의 세력확장을 저지하는 것이 주 목표였다.

프랑스 : 국가적 위상 회복, 영토 손실의 최소화, 프랑스에 적대적인 동맹해체가 주 목표였다.

오스트리아 : 다민족 국가였기에 자유주의, 민족주의 운동 발생을 통제하고자 했다. 동시에 러시아와 프로이센의 세력 확대를 견제하고자 했다.

프로이센 : 최대한의 영토 확보와 약소국 탈출, 강대국으로 부상하고자 함이 목표였다.

러시아 : 중부 유럽과 지중해로의 팽창을 원했다. 얼지않는 항구를 얻고자 했다.



비엔나 회의 전 지도
비엔나 회의 후 지도


주요 결정
러시아는 바르샤바 대공국(현 폴란드) 대부분 지역을 획득하였고, 프로이센은 작센 왕국과 바르샤바 대공국의 영토 등을 획득했다.

신성로마제국은 해체되고 독일은 연방을 구성하였다.

네덜란드 왕국이 건설되었다.

스위스가 영세중립국으로 승인되었다.



의의
빈회의의 결정 내용들의 현실화는 유럽의 근대국제체제가 완성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전쟁을 재발 방지를 위해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국제문제를 해결하기로 한 것은, 협조체제라는 원시적인 국제협력체제를 창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력균형을 위해 강대국 간 조정한 결정들이, 이후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을 막지 못했다는 점을 봤을 때, 빈회의의 주요 결정들은 혁명을 잉태하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해상권을 장악한 영국과 현 폴란드 전역을 차지한 러시아가 팽창하게 된 계기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