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ORDER RESEARCHES

빈체제 이후 유럽질서: 1815년 유럽협조체제의 탄생과 종말

국경따윈무시하는고양이 2025. 6. 8. 08:15

유럽협조체제의 4국동맹과 회의외교

유럽협조체제 Concert of Europe

 


Le gateau des rois, / tiré au Congrès de Vienne en 1815


유럽협조체제는 19세기 유럽의 강대국들이 모여 유럽의 세력균형, 정치적 경계, 영향권을 유지하기로 한 합의였다. 강대국들을 통합하게 한 주요 위협은 ‘전쟁과 민족주의’였다. 유럽협조체제는 4국동맹과 신성동맹, 회의외교 등을 통해 유지되었다.



4국동맹 (1815년)

4국동맹은 나폴레옹에 대항한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간에 1815년에 체결된 4국동맹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1814년에 체결된 쇼몽조약을 모체로 한다. 쇼몽조약은 프랑스의 재침략이 있는 경우 4국이 협조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과 국제문제를 다루는 회의 외교를 정례화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신성동맹(1815년)

4국동맹이 유럽협조체제의 물적, 실질적 기반이라면 신성동맹은 정신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회의외교 (1818 ~ 1821년)

회의외교는 4국동맹에 의해 제도화된 내용으로,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프랑스가 평화를 위협하여 생기는 문제를 협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대표적인 회의로 빈회의와 아래 여러 회의가 있다.

1) 빈회의 (1814~1815년) Congress of Vienna

2) 엑스-라-샤펠 회의(1818년) Congress of Aix-la-Chapelle
나폴레옹 전쟁 이후 연합국 군대의 프랑스 주둔 철수 문제를 논의한 회의이다. 이 회의를 통해 나폴레옹 전쟁의 전후 처리가 완료되고 프랑스는 강대국의 지위를 되찾았다.

3) 트로파우 회의(1820년), 라이바하 회의(1821년) Congress of Troppau, Congress of Laibach
나폴리 반란으로 인한 빈체제의 안정을 위해 오스트리아의 제의로 열린 회의이다. 신선동맹 3국의 반란 간섭 주장과 영국의 불간섭 주장이 대립되었지만, 라이바하 회의에서 정통주의 원칙에 따라 오스트리아의 군사개입을 결정하여 나폴리 반란이 진압되었다.

4) 베로나 회의(1822년) the Verona conference
이탈리아의 문제를 위해 소집되었으나 스페인 내란이 주요 의제였던 회의이다. 영국의 불간섭주의와 러시아의 간섭주의가 다시 대립했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3국은 프랑스로 하여금 스페인 반란을 진압하게 한다.


의의

베로나 회의를 끝으로 회의 외교는 끝난다. 국가 간 이익 조정이 한계에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패권 경쟁의 관점에서 볼 때 러시아와 영국의 대결 체제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후 지중해와 오스만 제국을 중심으로 두 국가의 대립은 본격화된다.